두 친구가 우리 성경 공부 모임에서 일어난 일에 책임자로써 강제출국을 당했다. 나는 간호국장에게 불려갔다. “네가 이단에게 속아 미쳤으니 지금이라도 돌이키라.” 거기에 “내가 미친 것이라면 예수로 인해 더 미쳐야 한다.”라고 대답했으니 나를 돕고 싶어 강제출국 명단에서 빼어준 그분의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만에 주일이 왔다. 방해가 있을 것이므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열명 정도의 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떼의 간호사들이 방문을 거칠게 두드리고 발로 차기도 하였다. “문을 열고 해산하지 않으면 종교경찰을 부르겠다.” 같이 예배하던 자매들은 두려워서 울다가 문이 깨질 정도로 흔드는 이들의 위압에 못 이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예배 장소에서 하나 둘 힘없이 나가버렸다. 나는 혼자 버티고 앉아 “너희가 누군데 감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냐?”라고 소리 질렀다. 그러자 그들이 나를 행 가리 태워 방 밖으로 집어던졌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단된 것이 너무 분하였다. 이대로 끝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구석에서 울고 있는 자매들 몇 명을 데리고 공동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예배를 다시 이어갔다. 그렇게라도 우리는 예배를 마쳤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했나?
나는 내가 성경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라 결론을 내리고 귀국하여 베뢰아 아카데미를 수강하겠다고 결정했다. 유일한 수입원이던 내가 대책 없이 돌아오자 어머니는 난감 해하셨다. 사우디에서 회개한 즈음 십일조를 가르쳐 주지 않았던 카톨릭에 분개했었다. 내 가정이 쌀이나 연료도 부족하게 추운 겨울을 나던 것은 십일조를 몰라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결과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때는 마침 일월 달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상의 없이 그동안 도둑질한 월급의 십일조로 그 달 월급 모두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 후 나는 십일조를 도둑질하지 않았고 선물을 받은 것의 십일조도 드리려고 애썼다. 그래서 비싼 물건을 선물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 비싼 물건값의 십일조를 할 현금이 그때도 현재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었지만 저축이 한 푼도 없는 가계의 우리 온 식구들은 갑자기 한 달 살 돈이 오지 않아 엄동설한에 무척 고생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일을 그만두고 성경공부를 하겠다고 한국으로 돌아온 딸의 결정이 반가울 수가 없고 소문대로 이단에 속은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도 했다는 것이 어머니의 후일담이었다.
다시 직장을 잡고 서울 성락 모교회에서 신앙생활과 베뢰아 아카데미 12기를 시작했다. 그때는 김기동 목사님이 10번 예배를 현 청년회관에서 인도하실 때였다. 주일에는 밤 근무 후에도 하루에 3-5번의 예배를 드려서 그 주간 말씀을 알려고 노력했다. 밤 근무 후 전철로 교회, 직장과 집을 오가는 생활이 피곤하여 졸며 다니기 일쑤였다. 나는 잠이 많은 체질이다. 어쨌든 내가 처음으로 인도했던 예배가 무참히 방해를 받은 것 그리고 인간의 방해를 받아 드리지 않고 재개하여 예배를 마쳤던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걸고라도 예배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이 신앙생활 처음부터 각인되어 은혜 받은 이후 현재까지 어떤 상황에서이든 주일 성수를 지켜내었다.
말기 암으로 이 년여간 산소 흡입을 하며 지옥에 중심에 떨어진 고통과 소양증 중에도 28-9kg의 몸으로 화장실도 못 가고 돌아눕지도 못하면서도 온라인 예배를 통해 설교를 했다. 또한 병원에 입원해서도 도와주는 사람들을 모아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배하는 자로 만드시고 예배하도록 마귀의 손아귀에서 풀어 놓으셨다.
내 삶에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졌다. 곧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부름받아 주의 종이 된 것이다. 세상에 존경받는 직분들이 많이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엄위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나 세상은 목사라는 직분은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들의 일이요 가난하고 별 특기도 없는 세상에서 소외된 천한 자들이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게는 너무 과분한 직분이다. 육체를 고치는 의사들이 세상에서 환영을 받으나 영혼을 고치는 주 예수의 일에 참여케 하시려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훈련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 감사 드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눈여겨보신 것은 내가 첫 예배를 포기하지 않고 마쳤을 때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2025년 03월 16일
담임목사 고 정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