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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25-12

한국에 돌아와 베뢰아 아카데미 12기를 하는 동안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곳을 거쳐간 환자들은 내가 전하는 복음을 거의 다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환자는 임종 전에 가족과의 마지막 시간에 내게 찬송가를 불러달라 하여 가족과 함께 찬송을 부르는 중 “저쪽에 천사들이 와 있다.”라고 하더니, “고맙다. 하늘에서 만나자.”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었다.

어느 여자 환자는 남편과의 불화로 쥐약을 먹어 무의식 상태로 호흡기로 장착하고 있었는데 내가 자기 귀에 대고 큰소리로 예수 믿으라 해서 귀찮아서 혼났다며 의식이 돌아온 후 불평했다. 결국은 예수를 영접하고 살아서 중환자실을 나갔다.

간경화증으로 거의 죽음에 이른 노인이 있었다. 나는 당신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사후에 갈 곳을 준비해야 한다며 예수 믿으라 하였다. 얼마나 고집이 센지 절대로 안 믿겠다고 하는 거였다. 숨이 꺼져가면서도 예수 안 믿는 거에는 완강했다. 이렇게 며칠 실랑이를 벌렸는데 드디어 그의 심전도는 심장의 뛰는 속도가 떨어지고 평평해지는 그래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심장이 곧 멈춘다는 의미이다. 이 환자에게는 심폐소생술을 시도하지 않기로 가족들과 합의한 바가 있어 모두가 심장이 완전히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끝이구나!’하고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도 그런 것처럼 그의 청력은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할아버지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했잖아요, 근데 지금 심장이 멈추니 이젠 지옥 가게 생겼잖아요!”하고 큰소리로 나무랐다. 웬걸 멈춰가던 심장이 다시 재 작동을 하며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급기야 눈을 떴다. 나는 다시 상황을 환기시켰다. 당신은 곧 죽는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라고 다그쳤다. 그는 작은 소리지만 또렷이 예수가 구주 이심을 고백했다. 그리고 일분도 안되어서 그의 심장은 완전히 멈췄다. 보호자를 만나보니 그 노인은 내 고교 동창의 시아버지였다.

구두 수선을 하던 한 남자 환자는 췌장암이었는데 수술 후 상처가 낫지 않았다. 내장이 썩어 심한 냄새의 피고름을 콸콸 쏟아냈다. 그렇게라도 살아있는 것이 의문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그 곁을 가려고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내가 구역질을 참으며 그의 붕대를 갈아주곤 했다. 항상 예수를 전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행히 그는 빨리 예수를 영접했다. 가족이 전혀 없었는지 면회자도 없던 그는 나를 무척 의지했다. 그러나 내가 쉬는 날 나를 찾다가 아주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했다.

전쟁터와 다름없는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분초를 다투는 일이다. 한번은 신체가 우람하고 목소리도 씩씩한 청장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중환자실 환경에 생경한 태도였다. 마치 ‘왜 내가 여기 와야 했는지? ‘하는 태도였다. 내 생각도 그랬다. 이 사람은 시간이 좀 있으니 내일 복음을 전해야겠다 하고 다음 날 출근했더니 그가 있던 침대가 비어있었다. 유행성 출혈열이었는데 밤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던 것이다.

어느 날 밤 근무는 최악의 밤이었다. 모두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지만 세 명이 그 한 밤에 시간을 다투며 숨졌다. 심폐소생술은 병원에서 임종하는 환자들이 거치는 마지막 의료 절차이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은 하나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한 생명을 살리는 총공세를 펼친다. 일단 호흡을 확보해야 한다. 기도에 삽관하여 인공적으로 기계를 통해 산소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멈추려는 심장을 깨우기 위한 전기 충격과 함께 여러 가지 주사액을 투입하고 여러 검사를 통해 스러져가는 목숨에 마지막 불꽃을 피우려 노력한다. 피를 말리는 절차이다. 살아나는 사람도 있지만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 절차를 통해 사람을 살려 냈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날은 한밤에 세 사람이 사망한 것이다. 그날의 우리 의료팀은 패잔병처럼 부스스한 모습으로 밤 근무를 마쳤다.

2025년 03월 23일
담임목사 고 정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