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
인류 발생 후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현재까지도 이 문제는 분명하고 확실한 결말을 내지 못하고 있다.
죽음이란 인간의 경험과 지식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으로 죽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자원이다. 학자들은 죽음이란 ‘ 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정지하여 원형대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라는 데 동의한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경험하는 죽음은 누구나 한 번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사건이며 그것으로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모든 것이 종말을 맞는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심장의 고동과 호흡운동 정지를 표준으로 삼으나 가사 상태로 한때 멈추었다가 다시 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삼일 이상의 심장과 호흡의 정지 상태를 죽음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현대의학은 뇌사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뇌의 죽음이란 말인데 뇌간과 뇌기능의 불가역적 상실이 어떤 의학적 수단으로도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을 칭한다. 신체의 대부분의 무의식적 기능 즉 호흡 같은 것은 뇌간이 담당하는데 그 뇌간 기능이 정지하면 심장은 스스로 튀지만 호흡기 없이는 호흡이 멈춘다. 외부 자극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호흡기 없이 자발적 호흡이 불가하고 차후에도 자발호흡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의사들이 판단하면 뇌사 판정을 한다.
그러나 나는 뇌사 판정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는 경험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뇌사자의 소생 기회를 박탈하고 즉시 장기 적출하는 것을 몹시 불안해한다. 한 사람의 장기로 몇 사람의 수명이 약간 연장되거나 신체적 불편이 해소됐다는 것으로 뇌사자 장기적출을 미화하고 있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고유 생명권 박탈이 어떤 이득 집단의 관여 없이 신중했는가를 깊이 논의해야만 한다. 생명권이란 출생 후 인간뿐 아니라 태아의 생명권까지도 국가와 사회가 보장하고 이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는 물론 처벌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대한 사안이다.
장기 적출과 이식의 윤리적 정당성은 여러 면으로 특히 종교적 사회적으로 생명권의 존중이란 면에서 깊이 다루어야 할 문제이며 확실한 윤리적 원칙이 세워져야 하지만 완벽한 것을 기대할 수 없고 준수될 것이란 기대 역시 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내가 아랍 사우디에서 일할 때 신체 건장한 젊은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뇌사 판정을 받았고 신장 적률을 위해 우리 수술실에 들어왔다. 뇌사자였기 때문에 의식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고통을 모를뿐더러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팔 다리를 수술 침대에 느슨하게 묶었다. 이론상 마취는 필요가 없어 근육 이완제와 경미한 흡입 마취제와 산소를 공급하고 있었다. 수술팀은 아무런 윤리적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복부가 절개되고 막 신장을 떼어 내는 순간이었다. 그 환자가 수술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쓰러졌다. 신장 둘은 이미 떼어졌다. 그렇게 그는 완전히 죽었고 우리는 살인에 가담자가 되었다.
최근 미국에서는 어느 젊은이가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고 장기적출 직전에 살아난 경우가 있었다. 적출 직전에 찾아온 가족들이 십여 분 기도하던 중 간호사였던 친척이 뇌와 심장 활력 징후가 회복되고 외부 자극에 강한 반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의사들에게 얘기했으나 단순한 근육 반응이라며 무시하였다. 가족들의 강한 요구로 호흡장치를 유지하며 기다렸더니 2일 후 눈을 뜨고 5일 후 호흡기를 떼고 중 7일 후 옆에 있던 자기 어머니를 부르며 완전히 소생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의사들이 뇌사 판정을 내리는 소리를 들었고 미치는 심정이었으나 말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나 한 사람의 목숨의 연장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필요하다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각기 구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의사도 인체 분야의 제한된 지식을 가진 직업인일 뿐이다. 섣부른 뇌사 판정은 암묵적 살인이요 하나님의 고유 권한에 대한 도전이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숫자의 젊은이들의 실종사건이 장기밀매와 강제 장기적출 등의 무서운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뜬소문이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세대인가?
2025년 7월 6일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