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비행기에서 내려 인천 공항을 나서니 포근한 봄 날씨 대신 매서운 추위가 옷깃을 뚫고 들어온다.
나의 봄에 대한 추억은 추운 개학식이다.
봄이 오는 한국의 삼월은 매서운 바람 때문에 영상의 날씨에도 무척 춥다. 삼월 초에 있는 개학식에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도열해야 한다. 초등학생은 교복이 없어 두꺼운 바지 속에 내복을 입고 저마다 인조 솜이 들어간 외투를 입어 발이 시린 것 외에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여학생 교복은 곤색이라하는 짙은 청색으로, 모양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나 대부분 스커트였고 두꺼운 검은 스타킹을 신었지만 종아리가 추웠다. 게다가 이쁘게 보이고 싶은 여학생들은 교복 속에 두꺼운 옷을 입지 않으려 하였다. 검고 긴 학생 외투는 보온성이 약하고 무거웠다.
긴 겨울과 초봄은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는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었다. 그럼에도 추운 계절 교실의 풍경은 정겨웠다. 교실 중앙에 큰 석탄 난로가 있고 큰 물주전자가 김을 내고 있거나 점심시간 전에는 아이들이 각자 싸온 납작한 큰 책 모양의 알루미늄 도시락이 차곡차곡 올려져 있어 따뜻하게 데워졌다. 물론 당번이 그 도시락 위치를 바꿔주어야 맨 밑에 있는 것이 타지 않았다. 도시락이 뜨거워지고 혼합된 반찬 냄새로 교실이 가득차면 그보다 더 좋은 냄새가 없었고 빨리 마치지 않는 수업시간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60 -70 년대 대한민국은 가난했고 불평이 많은 아이였던 나는 이런 평범한 학창 시절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몰랐고 부모님의 희생도 나중에야 알았다.
길고 혹독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가 싶으면 한국에는 항상 ‘꽃샘 추위’라는 것이 있다. 봄이 오면 무서운 겨울에 눌려 잠자던 나무들이 일어난다. 죽은 듯 숨죽였던 나무가지가 이파리 한장없이 화사한 꽃노래를 부른다. 기세 등등하게 온갖 심술을 부리던 겨울은 자존심이 잔뜩 상했 있다가 봄꽃 찬양단에게 눈을 마구 퍼붓는다. 비명을 지르며 꽃 찬양대는 흩어지고 떨어진다.
그래도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30년 만에 겨울에서 막 벗어나 봄으로 이어지는 시점의 서울 풍경을 보니 봄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우중충한 도시의 거리는 겨울의 패악질을 이긴 꽃봉우리들이 일제히 귀여운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펴는 소리로 가득하다. 연분홍색, 노랑색, 흰색 꽃들이 비단결 같은 바람을 두르고 몸을 살랑이며 조물주를 찬양하고 있다.
우리 성도들의 첫째 부활의 아침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거짓과 어둠과 사망을 이기고 생명의 부활로 깨어난 사랑스런 우리의 모습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가슴이 벅차시랴!
2026.04.05.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