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이후 솔로몬 성전 완공 전까지 성막/회막과 언약궤/법궤는 광야와 가나안 정복기에는 함께 움직였다. 그러나 사사기 말, 마지막 사사 엘리 제사장 시대에 있었던 블레셋과의 전쟁 이후 서로 분리되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성막 제작에 착수하여 출애굽 2년 차에 성막이 완성되었다. 하나님의 이름의 상징인 법궤가 지성소에 봉안되고 광야생활 40년과 가나안 입성까지 성막과 법궤는 함께 이동하였다.
40년간 그들은 광야에서 40여곳에 성막을 치고 제사를 드렸으며 성막을 중심에 두고 12지파가 진을 치고 야영하며 광야를 옮겨 다니는 나그네 삶을 살았다. 드디어 요단강을 건넌 직후 길갈을 가나안 땅의 첫 베이스캠프로 정하고 그곳에 성막과 법궤를 설치하였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한 뒤에는 성막과 법궤를 실로 (Shiloh)에 세웠으며, 실로는 사사 시대 300-350년 내내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신앙 중심지가 되었다. 사사기 말 엘리 대제사장 시절,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 군대에게 법궤를 빼앗기면서 성막과 법궤가 분리된다. 이때 실로는 파괴된 것으로 전해진다.
실로가 함락한 이후 법궤는 다음 경로로 이동되었다. 곧 블레셋 도시로 옮겨지면서 아스돗에서는 다곤 신상을 무너뜨리고 가드 에그론에서는 법궤에 불경한 자들이 재앙을 경험했다. 벧세메스에서 암소가 끄는 수레에 실려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 도중 호기심으로 들여다본 사람들이 화를 입었다. 기럇여아림에서는 아비나답의 집 산에 두고 아들 엘리아살을 구별해서 법궤를 지키게 하였다. 사울 재위기를 포함 70-100년간 그곳에 안치되었다.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에 옮기던 중, 웃사가 법궤를 만져 죽자 오벧에돔의 집에서 3개월간 머물었다. 예루살렘 다윗성에 다윗이 장막을 쳐서 안치한 후 솔로몬 성전 완공 전까지 보관되었다.
한편 성막은 실로 함락 이후 법궤를 잃은 후 본래의 모세 성막과 번제단은 별도로 존속했다. 제사장 아히멜렉 등이 머물던 제사장 성읍인 놉(Nob)은 성막이 있던 곳으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진설병을 먹은 곳이며 그 이유로 사울에 의해 제사장들이 학살당한 곳이다.
사울 사후부터 다윗·솔로몬 시대까지 국가의 공인 산당으로 기능을 한곳은 기브온(Gibeon)이다. 모세의 청동 번제단이 이곳에 있었으며,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고 지혜를 구한 곳도 바로 기브온 성막이었다.
솔로몬 성전이 완공된 것은 기원전 959년으로 그 후, 다윗성에 있던 법궤와 기브온에 있던 모세의 성막 및 모든 거룩한 기구들이 함께 성전으로 옮겨져 비로소 하나의 장소로 통합되었다. 아벡 전투로 법궤와 성막이 분리된 지 110-130년 후에 이루어진 일이다.
2026.09.20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