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뇌나 신경계가 없지만, 주변 환경을 기억하고 그에 맞춰 반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것을 식물 지능이라고 한다. 식물의 기억은 인간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 자극에 대한 생화학적·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저장했다가 나중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식물의 ‘기억’은 우리가 어제 먹은 점심을 떠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뇌가 없는 식물은 머릿속에 장면을 저장하는 대신, 몸속의 화학적 스위치를 켜고 끄는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한다. 그래서 식물의 기억은 ‘흔적’이라고 한다. 식물에게 기억이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 다음엔 이렇게 대처하자”라고 몸의 세포에 새겨 놓은 흔적과 같다.
자극이 사라져도 이 잠금 상태가 한동안 유지되고 그것을 나중에 활용하는 것이 식물의 기억이다. 다시 뜨거운 날씨나 가뭄이 오면, 이미 스위치가 조절되어 있는 식물은 처음 겪는 식물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며 살아남는다.
“작년 겨울에 진짜 추웠지”라고 회상 것이 인간의 기억인 반면, 식물의 기억은 환경의 자극을 세포 유전자 스위치에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과거보다 나은 대처를 하는 장치 체계를 가진 것이다. 추운 날씨를 겪으면 피부가 두꺼워진 채로 유지되어, 다음에 추위가 와도 끄떡없게 준비된 상태가 된다.
또한 보리같은 식물은 꼭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하고 그 추위를 ‘기억’해야만 봄에 꽃을 피울 수 있다. 이를 춘화 현상(Vernalization)이라고 하는데, 이때 식물은 뇌 대신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아주 특별한 도구를 사용한다. ‘후성유전학’이란 유전자는 그대로 두고 유전적 특성의 발현 여부나 강도는 조절하는 현상이다. 어떤 식물의 몸 안에 있는 그 식물의 수많은 설계도 즉 유전자 자체를 바꾸지는 않지만, 특정 유전자에 포스트잇을 붙여서 중요한 정보를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
보리는 추위라는 시련을 견뎌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날씨가 따뜻해져야 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추위’라는 숙제를 끝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추위라는 시련을 통과하지 않은 보리는 싹을 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 기억 중 일부는 심지어 씨앗을 통해 다음 세대까지 전달되기도 하니, 식물의 기억력은 인간보다 훨씬 끈질기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구원자가 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믿어야 구원받는다. 그러나 마귀에 눌려 있어 그 사실을 외면하고 유전은 고사하고 자손들에게 가르치지도 못한다. 반면 식물이나 다른 생물은 창조주에 대한 기억을 그 씨를 통해 후손에게 전달한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지상의 초목들과 작은 버러지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그들이 자신을 창조해 주신 이를 기억하고 영광 돌리는 신비한 현장을 엿본 적이 있다.
2026.04.19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