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처음 교회를 세울 때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으나 가장 큰 장애는 이단 시비였다.
한국 교회는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교단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감정적 대처로 인해 이단 규정이 남발되면서 믿는 자가 믿는 자를 의심하는 교계의 풍토를 만들었다. 이단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건설적인 신학적 토론이나 새로운 해석 시도가 차단되어 한국 교회의 지적 성장은 가로막혔다. 이단으로 지목된 단체나 개인은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그 가족이나 구성원들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인권 침해를 겪는다. 외부에서 볼 때 교계 내부의 끊임없는 정죄와 다툼은 개신교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어 전도의 문을 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피해는 입었지만 서울성락교회는 이단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인니는 발음하기도 힘든 ‘성락교회’로 이름하였고 내외적으로 서울성락교회의 지교회였다. 그후 김성현 목사님 감독 체제로 넘어갈 때 서울성락교회에서 독립하면서 ‘인도네시아 베뢰아 성락교회’ (GBSI, Gereja Berea Sungrak Indonesia)로 교회 이름을 확정했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이단시하며 총공격하는 ‘베뢰아’, ‘성락’ 그 두 용어를 망설임없이 다 쓰고 있다. 그것은 성령 훼방에 이골이 난 한국의 가짜 기독교인들이 전혀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빛이 왜 어둠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러나 서울에 지교회를 세우면서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김기동 성락교회를 무너뜨렸다고 박장대소하는 교권주의자들, 이단 감별사들과 같이 부화뇌동하는 한국 거짓 교인들에게 ‘김기동 성락교회’가 엄존하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들 뒤에 있는 원수 마귀가 패배를 시인할 만한, 음부의 권세를 위협하는 큰 교회로 서야하나 우리의 시작이 너무 미약했다.
‘베뢰아’, ‘성락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시무언의 영감과 역동적인 말씀의 능력, 절절한 예수 사랑과 그에 화합하며 순수한 믿음을 지켰던 성도들을 일으켜서 베뢰아운동의 큰 횃불을 다시 밝혀야하는 부담에서 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2년 동안 서울에서는 교회 이름에서 ‘베뢰아 성락’을 빼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자로 오신 길은 너무 험했다. 이 세상의 주인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환영은커녕 영접조차 하지 않았다. 처녀가 잉태하면 가족은 물론 온 사회의 지탄을 받고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시대의 위험을 모친만이 홀로 받아들였다. 친척에게도 멸시받던 미친 자요, 나사렛 이단 된 그를 사랑하고 받들어 성부의 뜻대로 죽으시는 십자가 밑까지 함께한 모성이 우리가 가져야할 신앙이다.
모친 마리아의 모성으로 ‘김기동 베뢰아 성락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진리를 수호해야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남자를 낳는 여자'(계 12:13)로서 첫째 부활에 들어가게 된다.
새교회당으로 가면서 ‘GBSI 서울베뢰아성락교회’로 교회 이름을 확정했다.
2026.05.03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