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께 대한 온전한 굴복과 변화
어떻게 그 권능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전적인 자기 굴복에 있으며, 바로 그 부분이 실천하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건성으로 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온전한 항복이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자기 굴복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신성한 축복을 받기 위한 원칙입니다. 빌립보서 2:6-8은 하나님과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낮추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실천은 자신을 비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조금씩 자신의 의지를 굴복시키며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즉각적인 과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지속적인 믿음의 시련이 필요한 변화의 여정입니다. 그리하여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의지가 우리의 의지보다 더 지배적이게 됩니다.
이 과정은 경기를 위해 훈련하는 운동선수와 비슷합니다. 이 훈련은 매일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 자주 훈련할수록 우리의 영적인 눈과 귀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더 민감 해집니다. 성령께서 부드럽게 속삭이며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거나, 특정 단어를 말하게 하시거나, 혹은 특별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이끄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영적 민감성이 없다면, 이러한 신성한 순간들을 그냥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 지식과 능력의 차이
이것은 엄연하고도 어려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고집하는 한,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영과 혼에 온전히 들어올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말을 유창하게 가르치고 강력한 신학적 논리를 세울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말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단지 말씀에 ‘대해’ 이야기할 뿐, 그 말씀의 실천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로 직접 설명하지는 못할지라도, 지적 지식에서 나오는 말과 하나님과의 실제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의 차이를 압니다. 누군가가 진정으로 성령께 순종하며 살 때, 그곳에는 다른 능력과 기름 부으심(anointing)이 있습니다.
◎ 결론: 내면의 정돈
결론은 단순하지만 도전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먼저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이 엉망인 채로 세상을 복음화 하느라 분주하지 마십시오. 우리 자신이 아직 성령께 온전히 순종하며 살지 못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하지 마십시오.
가능한 한 많은 은사를 구하십시오. 평범한 영적 상태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좇으십시오. 성령 충만을 좇으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적 은사들을 좇으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삶 속에서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할 때,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임을 믿으십시오.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믿음의 증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자기 홍보나 광고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 속의 하나님의 능력이 수천 마디의 말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뢰아 운동(Berea movement)을 실질적으로 일으키는 방법입니다. 화려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진정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고 다스림을 받는 삶을 통해서입니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에 임했다는 증거로서 이적과 표적을 낳을 것입니다.
(Fanny — GBSI Surabaya)
2026.05.17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