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쟁의는 노사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으로 노동자, 고용, 임금, 노동조건 향상과 기업편에서는 노동자의 집단적 협조를 통해 생산활동을 안정화하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과거 신분적 구속이나 노예제도를 철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계약기반 노동제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는 한 방법으로써의 노동쟁의 보장이 가져온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의 혈관과 다름없는 철도, 지하철, 대중교통, 생필품 등, 화물 운송업체들의 빈번한 파업 소식이나, 현대산업의 핵심부품업체들의 파업이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들의 파업소식은 전 세계인들에게 노동쟁의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일으킨다.
한편 한국에서 발생되는 노동쟁의는 그 일부가 국가 체제 자체에 비판적인 이념을 수용하여 노동 문제 해결이라는 주목적에서 이탈, 노동자의 권익 보호는 뒷전이고 체제 변혁이나 반(反)체제적 투쟁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특히 북한의 대남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는 의구심이 더해져, 단순한 임금·복지 협상을 넘어 국가 안보와 체제의 안정을 위협하는 행동으로 인식되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로 건국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농업 중심 후진국을 공업 중심 신흥 공업국으로 세우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경제개발로 부국이 된 대한민국은 1980 -1988년 전두환 대통령 재임 기간에 경제강국 반열에 올랐다. 80년 초 오일쇼크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김재익 경제수석을 기용하여 안정화를 달성했다.
물가 상승 억제, 과잉투자 구조조정 등을 실시했다. 때 마침 전세계가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삼 호황을 맞자 그 삼저를 지혜롭게 이용하여 다른 나라는 하지 못한 비약적 수출성장과 물가 안정을 달성했고 높은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다. 사회적으로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 등 대외적 위상을 높였다. 국민 연금제 제정 최저임금 법제화로 현대적 사회 안정의 초석을 닦았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전두환 대통령의 걸출한 리더십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수령 일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독재 봉건 세습 체제인 북한의 노예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민주화 곧 노동운동이 격발된 시기는 1987년 7-9월 사이이다. 이전까지 한국 노동쟁의는 일부 숙련 노동자와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된 소규모 학생들이 주를 이룬 것이었으나 이 시점을 계기로 대규모 투쟁으로 성격과 규모가 완전히 바뀌었다.
전체산업 분야에 걸쳐 수많은 노동자가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이 몇 개월간 파죽지세로 일어났다. 이후로 노동조합수가 급증하여 현재도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일어나는 노동쟁의로 대한민국 산업은 지금까지 그 발목이 잡혀 있다.
그 유명한 전태일 분신 사태가 있었고, 전국 민주 노동 조합 총연맹 (민주노총)이 결성되어, 조직적이고 파괴적이며 전국적 규모의 세력으로 진화하였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민주화 운동과 맞물려 있다고 평가된다. 진정한 민주화 운동이라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환원을 촉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노동계의 대표단체인 민주노총은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퇴보시키는 여러 정치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2026.07.12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