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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26-30

유럽의 중세는 봉건적 신분 질서 사회로서 절대 왕정이 지배하던 전근대적 사회였다. 카톨릭 성직자, 귀족, 평민으로 나뉜 엄격한 신분 사회, 농업 농노 사회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모두 이런 구체제(Ancien Régime)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혁명을 겪었다. 영국의 방식은 점진적이고 타협적인 입헌군주제로의 진화였다면, 프랑스는 급진적이고 단절적인 공화정 수립과 반복된 체제 변화를 겪었다. 공화정이란 국가는 개인 군주의 소유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공동재산이란 개념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실현하는 정치체제이다.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영국은 명예혁명과 권리장전(1689년)으로 피를 흘리지 않고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군주는 상징적 존재로 남고 실질적인 통치권은 의회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왕권을 점진적으로 축소하여 급진적 체제 전복 없이 민주주의를 실현하였다.

반면 프랑스는 구체제의 모순을 근본적, 급진적으로 타파하고자 했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은 봉건제 폐지와 인권 선언으로 시작되어 같은 해 1792년 9월 마침내 왕정을 폐지하고 제일 공화정 수립 4개월후 루이 16세를 단두대 처형을 해버린다. 몇달 후 왕비도 처형되고 아들 등 가족들이 죽임을 당한다. 공화정 수립 이후에도 공포정치, 나폴레옹의 제정, 왕정복고, 다시 공화정(제2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체제의 불안정이 19세기 내내 거의 100 년 동안 지속되었다.

군주제와의 완전한 단절 시도는 왕권과 민권 사이의 매우 격렬한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파리 중심의 급진적 혁명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지방 세력 간의 갈등이 내전으로 번졌고 이 과정에서 반대파를 ‘반혁명 분자’로 규정하고 숙청하였다. 프랑스 혁명기의 사망자 수는 관점에 따라 추산치가 매우 다양하지만 약 50만 명이 사망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140만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공식처형이나 단두대 즉결 처형만도 약 2만 5천 명~4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프랑스 혁명은 기존 체제를 완전히 뒤엎고 평등을 국가의 기본 가치로 삼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프랑스 사회에 ‘공동체적 가치’와 ‘평등주의’를 깊게 뿌리내리게 했으며, 자본주의의 시장 원리보다는 국가가 나서서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개입주의와 국가주의적 신념을 강화하는 토대가 되었다.

프랑스의 좌파 정당들은 시장의 법칙을 ‘야만적’이라고 비판하며, 시장 경제 보다 국가의 규제와 복지가 경쟁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국가가 교육, 공공 서비스, 복지 등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주도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그런 시스템 또한 갖춰져 있어, 사회주의적 정책이 뿌리내리기에 용이한 환경을 제공한다.

노동계의 에너지, 관광 등 국가 핵심 산업의 마비를 초래하여 즉각적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키고 기업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특히 관광업과 같이 서비스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 큰 타격을 준다.

노동 유연성이 낮은 프랑스 시장에서 어렵게도 노동조합의 강력한 영향력은 기업의 고용 및 구조조정을 만들어, 기업의 투자와 채용 의지를 저하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프랑스는 높은 실업률(2026년 기준 약 8.2%/한국 3.52%/인니 4.68%)을 겪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관대한 실업 급여 제도 등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강력한 사회주의 정책인 복지 모델을 유지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시장경제를 병행한 것과 같다. 충돌과 섣부른 봉합이 반복되고 갈등과 불안은 고조되기만 한다.

2026.07.19.

담임목사 고정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