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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26-36

20세기 이후의 세계사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율성 중시하는 축과 국가의 계획과 평등분배를 중시하는 축 사이의 거대한 투쟁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냉전이라고도 한다.

한국 사회 역시 이런 투쟁의 중심에서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겪는 나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들이 경험했던 비극과 경제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사상적 전통을 계승하거나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련의 붕괴와 북한의 현실, 쿠바, 베네수엘라의 경제 파탄 등으로 인류역사가 사회주의의 실패를 명백히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끊임없이 사회주의적 정책이나 사상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까? 여기에는 인간의 심리와 인간세계의 시스템이 갖는 어쩔 수 없는 약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① 자본주의가 낳은 ‘상대적 박탈감’과 양극화이다.

자본주의는 절대적 빈곤/기아를 해결하는 데 탁월하지만, 풍요 속의 불평등/양극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과거에는 모두가 굶주렸기에 불만이 덜했다면, 지금은 ‘나도 굶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은 거액을 가진’ 사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중은 절대적인 물질적 풍요보다 눈앞에 보이는 상대적 격차에 질투하며, 이를 강제적으로 재분배하겠다는 사회주의적 구호 곧 결과의 평등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② 인간의 본능은 ‘두려움’과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인간은 수렵 채집 시절 동안 작은 부족 단위로 사냥한 고기를 똑같이 나누어 갖는 공유 경제 속에서 진화했다. 따라서 인간은 ‘불평등에 대한 거부감’과 ‘공동체가 내 생계를 책임져 주길 바라는 마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므로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준다. 반면 사회주의는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달콤한 안정감을 약속하므로, 경제적 위기나 고용 불안이 올 때마다 이 본능이 자극된다.

③ 위선적 ‘도덕적 우월감’이 주는 만족감이 있다.

사회주의 이론은 “약자를 보호하고, 자본가의 착취를 막으며,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매우 도덕적이고 직관적인 구호를 가지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나 경제 메커니즘을 복잡하게 이해하기보다 감정적 정의에 이끌리기 쉬운 청년 세대나 지식인 계층에서 “과거의 사회주의는 독재 때문에 실패한 것이지, 이상 자체는 옳다. 우리가 하면 다를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환상을 품는 경향이 반복된다.

④ 포퓰리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사회주의적 구호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복잡한 규제 완화나 생산성 향상 정책보다, “부자들의 돈을 거두어 당장 나누어 주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이 대중의 표를 얻기 훨씬 쉽기 때문이다. 쉽고 현실적 결과를 약속하는 포퓰리즘 즉 ‘사회주의 체제로의 부분적 회귀’는 빵 부스러기를 준 댓가로 과도한 규제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큰 정부를 끊임없이 부추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는 인류를 수천 년의 기아에서 건져낸 유일무이한 체제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격차와 경쟁의 피로감 때문에, 인간은 역사적 교훈을 잊고 다시 ‘국가가 다 해결해 주겠다’는 사회주의적 환상으로 회귀하려는 심리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눅 19: 12-27에서는 열명의 종들 각각에게 한 므나를 동일하게 나눠주고 경영의 결과만큼의 댓가로서 고을을 보상받는다. 하나조차 경영치 않은 자는 그 하나마저 빼앗긴다. 그런데 14,27절에는 이런 체제를 부여한 왕을 미워한 자들을 왕의 원수로 여겨 끌어와서 죽이는 심판이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성서적이다.
인생은 원래 피곤한 것이다.

2026.08.30.

담임 목사 고정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