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0년 예루살렘 멸망은 로마 제국과 유대인 저항군 사이에 벌어진 제1차 유대-로마 전쟁(AD 66~73년)의 결정적 사건으로, 제2성전이 파괴되고 유대 민족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한 일대 사건이다.
그 배경은 로마의 가혹한 통치 즉 과중한 세금과 종교적 마찰로 서기 66년에 일어났다. 로마 총독들의 부패, 과도한 징세, 유대교 신앙에 대한 탄압으로 갈등이 고조되어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성전 금고 약탈 사건을 계기로 급진적 저항 세력인 열심당원(Zealots) 등이 로마 수비대를 몰살하고 예루살렘을 장악하며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로마 황제 네로는 명장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진압을 명했고, 그는 갈릴리 일대를 평정했다. 네로 사후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로 추대되자, 그의 아들 티투스(Titus)가 지휘권을 넘겨받아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싸고 고립시킨 뒤 공격하여 점령하는 군사 작전을 맡았다. 결국 5개월간의 포위 끝에 AD 70년 4월 ~ 9월 함락하였다. 티투스는 유월절을 맞아 순례객이 대거 몰려든 70년 봄, 도시를 완전히 에워싸고 퇴로와 식량 공급을 차단했다.
성 안에서는 여러 저항군 파벌 간의 내전이 벌어져 식량창고가 불타는 등 참혹한 기근이 발생했다. 8월 말경 안토니아 요새에 이어 유대인의 종교적 중심지인 제2성전 – 헤롯 성전이 화재와 함께 완전히 전소·파괴되었다. 9월 초 상부 도시까지 함락되면서 도시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당시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기록에 따르면 수십만에서 백만명이 웃도는 사망자가 났으며, 1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포로가 되어 로마로 끌려가거나 노예로 팔렸다. 로마 콜로세움 건설에 이 당시의 전리품과 노예가 된 유대인의 노동력이 투입되었다. 제2성전이 파괴되고 성전 제사가 영구히 중단되면서, 사두개파와 제사장 중심 체제는 소멸하고 회당 중심의 랍비 유대교 체제로 재편되었다.
성전 파괴 이전 예루살렘을 탈출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유대교 전통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되었다.기독교와 유대교가 분명히 분리되고 유대인 기독교인 예배처인 디아스포라 / Diaspora가 가속되고 본격화되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예루살렘 멸망 예언은
마태복음 24:2,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누가복음 19:43-44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외 여러 구절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예언은 약 40년 뒤인 서기 70년(AD 70),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실제로 실현되었다.
그리스도가 유대인에서 나셨고 그들의 땅에서 이웃으로 거주하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역사에 오직 한번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보고도 믿지 않은 악심의 결과는 명확했다. 육으로는 예루살렘 멸망으로 노예가 되는 것이었고 영혼으로는 마귀의 노예가 되어 함께 영원히 멸망하는 것이었다.
영의 일만이 우리를 영원히 살린다. 육의 일은 이생에도 내세에도 무익한 것이다.
육체의 나라는 잠깐이고 우리의 진정한 나라는 하늘나라이다. 육체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지 말아야한다.
2026.09.06.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