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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26-38

마사다 항쟁은 서기 73~74년경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의 마지막 전투이자, 로마 제국의 지배에 맞선 유대인 결사대가 천혜의 요새 마사다에서 벌인 비극적인 최후의 항전이다.

서기 70년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과 예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보셨던 제2성전 곧 헤롯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강경 열심당 분파인 시카리파(Sicarii)와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Eleazar ben Ya’ir)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 저항군 및 민간인 약 960명이 사해 서쪽 절벽 위의 마사다 요새로 집결했다. 그곳은 원래 헤롯 대왕이 유사시 피난용으로 지은 요새여서 방대한 식량 창고와 정교한 수로·저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서기 73년, 로마 총독 루키우스 (Lucius)가 이끄는 군단 및 유대인 부역 노예를 포함해 약 1만 5천 명의 병력이 요새를 완전히 둘러쌌다. 절벽 높이가 400m에 달해 일반적인 접근이 불가능하자, 로마군은 서쪽 절벽에 수개월에 걸쳐 거대한 흙과 돌의 경사로/토성을 쌓아 올렸다. 완성된 경사로를 통해 공성탑이나 파쇄차라는 성벽을 부수는 무기를 끌어올려 외벽을 부수고 요새 진입 직전까지 이르렀다.

로마군이 성벽을 뚫고 요새 안으로 들이닥치기 전날 밤, 지도자 엘리아자르는 “로마인의 노예가 되거나 능욕당하느니 자유인으로서 존엄하게 죽자”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자살을 해야 했다. 가장이 가족을 먼저 죽인 뒤 제비를 뽑아 선출된 10명이 나머지 사람들을 죽이고, 마지막 1명이 남은 동료들을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집단 자결을 감행했다.

다음 날 아침 진입한 로마군은 불타버린 요새와 960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지하 물탱크에 숨어 있던 여성 2명과 아이 5명만이 살아남아 이 사건의 전말을 역사가 요세푸스에게 증언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마사다는 다시는 함락되지 않는다(Masada shall not fall again)”라는 구호와 함께 국가적 저항과 불굴의 상징으로 기억되며, 이스라엘 기갑부대 등의 신병 선서식을 이곳에서 갖는다고 한다.

믿음에서 오는 선한 고집이 센 것은 축복이다.
심지가 곧은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악심이 팽배했던 유대인들이 유대교를 지키고 이 땅에 다윗의 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했던 헛된 소망과 충성의 불길은 하나뿐인 목숨을 태우기에 충분했을 뿐이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그들은 정면으로 거절하였다.

그들의 최후는 장렬했으나 어이없고, 사람의 노예가 되지 않았지만 예수의 종이 될 영광은 버렸다. 죽기까지 버텼지만 감정과 신념이라는 자기 우상에 헌신했다. 바람에 마모되어 사라지는 한줌 모래 알갱이들의 착각이었다. 향방없이 달음질하고 권투선수가 허공을 치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고전 9:26)

복음을 위하여 기록된 대로 모든 것을 행하여야 복음에 참예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