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이후 1650경에 노아 홍수가 있었고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으로 새 인류를 형성하려 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땅에 흩어져 편만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구음과 언어가 하나인 그들은 서로 의지하고 의논하며 시날 평지에 모여 살게 된다(창11:1). ‘벽돌을 굽고 역청으로 성과 대를 쌓아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 자신들의 이름이 유명하게 하고 온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고 합의하고 바벨탑을 쌓았다(창11:2-9). 노아 홍수 후 150년 경의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결국 성 쌓기를 그치고 지면으로 흩어졌다. 200년쯤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발견하신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을 비롯한 70여명이 애굽으로 들어간 해는 기원전 1876년경이다. 430년후 큰 민족을 이룬 이들은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 하게 된다. 모세와 40년간 광야 생활 후,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12지파에게 땅 분배로 25-30년 경과 후, 사사기 330-350 년, 사울과 다윗이 각각 40 년간 왕국을 유지한다.
드디어 솔로몬 성전이 기원전 959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후에 다시 세우리라’ 하신 말씀의 성취를 앞두고, 유대인들의 맹렬한 종교적 신념과 분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소가 폐해지고 복구되는 이스라엘의 종교사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구약을 읽다 보면 산당에 대한 기술이 많이 있다. 산당(바마, Bamah)은 성막이 아니다. 성막이나 성전과 명확히 구분되는 별개의 야외 제사 장소였다.
성막 (Tabernacle/성소)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설계도를 보여주셔서 짓게 하신 (히 8:5) 이동식 성소이다. 언약궤가 놓이고 대제사장이 속죄 제사를 집례하던 이스라엘 신앙의 공식적인 단일 중심지였다.
산당 (High Place, 히브리어: 바마·בָּמָה)은 언덕이나 산, 높은 평지에 돌단을 쌓아 만든 개별 제단 시설이다. 본래 가나안 원주민들이 바알이나 아세라 등 우상을 숭배하던 장소에서 기원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왜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을까?
언약궤를 빼앗긴 후 실로에 있던 성막 체제가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파괴되고 성막의 본래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다윗 시대에 언약궤는 예루살렘 다윗 장막에 있었고 성막 기능은 기브온 산당에서 이루어져 통일된 중앙 성소가 없었다. 해서 솔로몬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 과도기적으로 산당 제사가 묵인된 것이다(열왕기상 3:2-4).
산당은 지리적 접근성과 민간 편의성을 제공했다. 예루살렘까지 절기마다 제물을 끌고 이동하기 어렵다는 자들에게, 마을 근처 언덕에 위치한 산당은 일상적인 화목제나 감사제를 드리기에 훨씬 편리했다. 가나안 토착 족속들은 “높은 곳이 신과 가깝다”고 여겨 산꼭대기에 제단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예루살렘 성소로 가야 했지만 편리성 때문에 이방 종교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드렸던 것이다.
사무엘, 다윗, 솔로몬 즉위 초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 장소로 쓰이기도 했으나, 솔로몬 성전이 완공되었음에도 산당에 여호와의 제단과 함께 바알신이나 아세라 목상을 같이 세워 섬겼다.
코로나-19(COVID-19) 이후 어느 교회의 일원으로 차비와 시간을 들여 교회당까지 와서 예배 드리고 그 교회의 무거운 일들을 같이 감당하는 것은 번폐스런 일이다. 그래서 생겨난 온라인 예배는 현대 교회의 산당이다. 마귀의 일도 어제나 오늘이나 변한 것이 없다.
2026.10.04.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