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사도들이 지중해 전역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로마 제국이 구축한 정치·사회적 체제와 인프라도 큰 기여를 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 약 200년간 지속된 고대 로마 제국의 최대 번영기이자 평화 유지 체제를 ‘ 팍스 로마나’라 하는데 이때의 상대적 평화는 지중해 세계의 국경내 내전을 종식시키고 극적인 치안 안정을 가져왔다. 제국 전역의 통행이 자유로워졌으며, 이전 시대처럼 지역 군벌이나 부족 간의 국지전에 가로막히지 않고 여행할 수 있었다.
폼페이우스 이후 로마 해군이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하면서, 지중해는 제국의 내해로 바뀌었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전도자들은 에게해와 동지중해를 곧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반도를 배편으로 안전하고 빠르게 횡단할 수 있었다. 주요 교역로에 배치된 로마 군단 덕분에 여행자를 노리는 산적의 위협이 줄어들었고, 평민 신분의 상인과 여행자, 전도자들의 대규모 이동이 일상화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대로, 군사·행정 물자 수송을 위해 닦인 8만 km이상의 군용 도로망(Via)은 배수 시설과 자갈·돌 포장을 갖추어 계절에 관계없이 로마군대 뿐 아니라 일반인도 도보나 마차 이동이 가능하였으니 곧바로 선교사들의 이동 경로가 되었다. 바울도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도시들을 순회할 때 이 도로망을 직접 이용했다. 또한 국가 공문서 수송과 관료 이동을 위해 20~30km마다 설치된 숙박 시설과 국가 통신망은 민간 여행자들에게도 지리적 이정표와 보급 거점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바울 서신, 공의회 서신이 각 지역 교회로 수 주 내 전달되었다.
로마 제국은 헬레니즘 문화를 계승하여 지중해 동부와 대도시 전역에 코이네 헬라어(Kione Greek)를 공용어로 통용시켰다.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 등 출신이 달라도 헬라어 하나로 직접 설교하고 토론할 수 있었다. 이미 헬라어로 번역되어 있던 구약성경 70인역 덕분에, 이방인 회당이나 개종자들에게 메시아 예언과 복음의 연속성을 즉각 설명할 수 있었다.
단일 법체계와 시민권 제도는 전도 활동 중 닥친 위기 상황에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로마 시민권은 강력한 법적 보호막이었고 불법 체포와 즉결 처형을 방지했다. 로마 시민은 재판 없이 체포·구타당하지 않으며, 황제에게 직접 상소할 권리를 가졌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불법으로 매를 맞았을 때 바울은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밝혀 행정관들의 사과를 받아냈고,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암살 위협에 직면했을 때 로마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총독과 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안전하게 압송되었다. 시민권 덕분에 선교는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까지 확장된 것이다.
팍스 로마나 체제로 상업은 번창 되고, 제국 전역의 대도시, 안다옥, 알렉산드리아, 에베소, 고린도, 로마로 인구가 집중되었다. 도시마다 형성된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회당은 초기 전도자들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 설교할 수 있는 공식적인 소통의 장소가 되었다.
다신교 사회의 도덕적 혼란에 염증을 느끼고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과 도덕률에 관심을 갖던 헬라인·로마인들이 회당 주변에 모였고 이들이 할례나 율법의 엄격한 규례 없이 믿음을 강조한 기독교 복음의 핵심 수용층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다져 놓은 언어적 통로 위로 로마의 도로와 법이 깔리면서, 지방의 소규모 신앙 운동에 불과했던 기독교는 수십 년 만에 제국 전체로 번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영웅이나 거대한 제국의 출현도 하나님의 경륜안에서는 한 방울 이슬이나 한줌 먼지에 불과한 것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2026.10.25.
담임 목사 고정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