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형(Crucifixion)이 고대 형벌 중 가장 끔찍하고 가혹한 형벌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못이 박히는 상처 때문만이 아니라,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최대한 길게 유지하면서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도록 해부학적·심리적으로 설계된 사형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Cicero)조차 이를 “가장 잔인하고 역겨운 형벌 “이라고 부르며 로마 시민에게는 적용을 금기시했다.
십자가형의 가장 직접적이고 흔한 사망 원인은 과다출혈 보다는 지속적이고 고통스런 질식이다. 양팔이 벌려진 채 매달리면 상체의 체중이 가슴 근육과 횡격막을 아래로 끌어내려 폐가 들이쉬는 상태/흡기로 고정된다. 숨을 들이쉬기는 쉽지만, 공기를 내뱉기/호기가 극도로 어려워진다. 이렇게 호흡체계의 붕괴가 일어난다.
숨을 한 번 내쉬기 위해서는 못이 박힌 두 발을 지지대 삼아 체중을 위로 밀어 올리거나, 못 박힌 손목의 힘줄과 뼈로 몸을 당겨 올려야 했다.
숨을 쉬기 위해 몸을 올릴 때마다 손목과 발의 신경이 찢기는 격통이 발생하고, 힘이 빠져 다시 축 늘어지면 서서히 숨이 막혀온다. 이 처절한 동작을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수시간에서 며칠 동안 수백 번 반복해야 했다.못은 보통 손바닥이 아닌 손목 뼈 사이인데 해부학적으로 체중을 버틸 수 있는 요골과 척골 사이에 박혔다. 이 부위를 관통할 때 손의 주요 감각과 운동을 담당하는 정중신경 (Median nerve )이 손상되거나 파열된다. 정중신경이 손상되면 마치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작열통이 팔 전체로 퍼지며,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켜 마비되어 버린다.
십자가형의 본질은 빠른 처형이 아니라 고통의 극대화 및 고의적으로 죽음을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일부 십자가에는 엉덩이나 발을 살짝 받쳐주는 작은 나무 받침대가 덧대어 지기도 했다. 이는 자비가 아니라, 사형수가 너무 빨리 질식해 사망하지 않도록 체중을 분산시켜 고통받는 시간을 수일 동안 연장하기 위한 장치였다.
사형수를 빨리 죽여야 할 때는 정강이뼈를 쇠망치로 부러뜨리는 형벌을 가했는데, 다리가 부러지면 더 이상 발을 딛고 몸을 들어 올릴 수 없어 몇 분 안에 질식사했기 때문이다. 매달리기 전 집행되는 채찍질(뼛조각이나 쇳조각이 달린 채찍)로 인해 이미 심각한 피부 박리와 출혈이 일어난 상태인대 뙤약볕 아래 노출되면서 극심한 탈수증이 발생하고, 혈액량 감소로 인한 쇼크, 심낭 및 흉막과 심랑에 삼출액이 차게 된다. 이 이유로, 요 19:34, 어떤 병사가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던 것이다.
또한 체내 이산화탄소 축적으로 인한 젖산 산증이 겹쳐 온몸의 장기가 차례로 무너져 내린다. 이 처형은 철저한 인격 말살과 공개적 수치가 목적이었다. 로마 제국에서 십자가형은 반역자, 반란 노예, 극악한 흉악범에게만 내리는 사회적 낙인이었다.
사형수는 옷이 완전히 벗겨진 채 매달렸으며, 대 소변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과정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길목, 성문 밖, 언덕 위에 높이 세워 통행인들의 조롱과 모욕을 받게 했다. 시신은 십자가 위에 그대로 방치하여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십자가형은 한 인간의 육체가 느낄 수 있는 한계치에 달하는 고통을 가장 잔인하게 연장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바닥까지 짓밟아 반역과 저항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고도의 심리·육체적 고문이었기 때문에 공포와 수치 그 자체였다.
죄는 곧 사망이다. 그 잔인함과 죽이기 어려운 끈질김, 수치와 더러움을 예수께서 우리 대신 당하신 것이다!
지난 글에 오류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아침 6시가 1시이므로 십자가 달리신 시간은 삼시 (아침 8시)였고 숨을 거두신 시간은 구시(오후 2시)였다.
하루 중 가장 명랑하고 활기찬 시간에 우리의 구주는 음부의 중심으로 내려가셨다.
2026.11.08
담임목사 고정금
